“여기에 오래 사는 풍경이고 싶어요.”
한뼘책방 & 금요일의 아침, 조금 조은영 대표
“구제주 이도이동 골목 안, 두 개의 이름을 가진 한 공간이 있다. 책방인 ‘한뼘책방’과 브런치 카페 ‘금요일의 아침, 조금’. 공간의 이름을 들었을 때, 공간 운영자에 대한 흥미로움이 일었다. 좁은 골목 안, 세 갈래 길 한 중간에 위치한 이 공간. ‘내가 사는 골목 안에 그대로 옮겨다 두고 싶어.’라는 생각이 든다. 화덕에서 구운 피자와 파스타 먹으러 가기, 책을 사고 커피 한잔하기, 심심한 저녁 주민들이 모여 다양한 기획과 활동을 하는 모임에 참여하기…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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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뼘책방’과 ‘금요일의 아침, 조금’을 운영하는 조은영입니다.”
Q. 운영하시는 공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금요일 아침, 조금’은 식사와 커피 메뉴가 있는 브런치 카페예요. ‘한뼘책방’이라는 하나의 이름이 더 있는데, 이름만으로도 아시겠지만 책을 함께 취급하고 있습니다.”
Q. 한뼘책방은 주로 어떤 류의 책을 취급하나요?
“일단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 위주인데요. 문학, 에세이, 예술, 사회 분야의 책들이에요. 그런데 요즘 ‘큐레이션을 조금 더 날카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한뼘책방이 ‘시 전문 책방’, ‘소설 전문’, ‘그림책 전문’ 이런 식으로 특화된 분야를 딱 내세우지 못하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키워드 중심의 큐레이션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키워드 중심의 큐레이션’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보통 장르별로 특화된 동네서점들이 많은데, 간혹 ‘4.3’이나 ‘여성’ 등 주요 키워드에 맞춰서 그에 관련된 도서들을 갖추고 운영하는 곳들도 있어요. 저도 이런 식으로 보다 날카롭고 세분화된 주제나 분야를 골라 서가를 운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현재는 과도기랄까요.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책, 사람들도 같이 좋아했으면 좋겠는 책들이 갖춰져 있고요, 의식적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 ‘자연과학’이나 ‘환경’ 분야의 책들도 조금 갖추고 있어요.”
Q. 의식적으로 자연과학이나 환경 분야에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은, 그것이 운영자의 ‘원래’ 관심사는 아닌 거군요?
“이렇게 말하면 좀 거친 이분법이긴 하지만, 저는 소위 말하는 ‘문과형 인간’이예요. 그러다 보니 주로 문학, 사회 분야의 책들을 편식하여 읽어왔는데, 나이가 들면서 약간 후회가 되더라고요. 자연과학적인 시각이나 태도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거나 하는 것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게다가 요즘에는 그런 분야도 에세이 형식으로 읽기 쉽게 많이 나오고 있어요. 알아야 했으나 그동안 무심히 지나가던 어떤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느낌이 들어서 요즘엔 제가 잘 보지 않았던 분야의 책들을 의식적으로 가져다 놓고 있어요.”
Q. 동네서점인 ‘한뼘책방’과 카페 겸 브런치 가게 ‘금요일의 아침, 조금’의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시작은 카페 요식업이 먼저였어요. 더 이전에는 제주로 오기 전 출판 잡지 쪽 일을 했고요. 제주에 와서 살게 되면서 프리랜서로 원래 하던 일들을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했죠. 그러다 하던 일을 접고 제주에서 생업으로 카페 겸 식당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원래 하던 일에 미련을 가지기 마련이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동시에 든 생각은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좋아한다고 해서 꼭 만들거나 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어요. 좋아하는 것을 파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팔기 위해서 읽게 되고, 제가 좋아하는 책들을 갖출 수 있다는 생각에 가게 한 켠에 생뚱맞게 서가를 조그맣게 마련했어요.”
Q. 그게 ‘한뼘책방’의 시작이군요?
“네 맞아요. 팔기 위해 들여논 책이 10종도 안 됐어요. 그 작은 서가가 정말 한 뼘만 하게 작았어요. 그게 ‘한뼘책방’의 시작입니다. 한뼘책방이라는 게 그 당시의 제 마음 상태이기도 했어요. 보통 ‘책을 읽어야지’ 하는 책에 대한 마음의 짐 같은 것을 누구나 한 뼘 만하게 가지고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한뼘책방’은 물리적인 사이즈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고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가지고 있는 서가의 크기이기도 해요.”
Q. 그럼, 이번엔 ‘금요일의 아침, 조금’ 이름에 대한 의문을 풀어야겠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원래 저희 부부가 정했던 이름은 ‘조금’이었어요. 제가 ‘조 씨’ 이고요, 남편이 ‘김 씨’거든요! ‘조금’일수도 있었는데 여기서 조금만 더 설레는 이름으로 정해보자고 생각하다가 ‘금요일의 아침’이 붙은 거예요. ‘금요일 아침’의 그 아침만 지나면 다음에 오는 아침은 주말이잖아요. 주말을 기다리는 설레임 같은 것들, 그런 시간에 대한 느낌을 더해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Q. 서울에서 출판 잡지 쪽 일을 하시다가 제주에 오시게 된 계기는 뭔가요?
“속아서 왔어요.”
Q. 네? 하하, 좀 더 설명을 해 주세요.
“남편이 한 3년만 제주에서 살다가 다시 올라가자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여기 살고 있네요.”
Q. 이곳을 찾는 손님은 어떤 분들인가요?
“단골분들은 동네 주민분들이 절반 정도되고요, 이곳에서 제가 모임을 꾸준하게 하고 있어서 모임 때문에 외부에서 꾸준히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책방 투어 지도’를 들고 가족 단위나 친구와 함께 책방을 찾아오는 여행객들도 있어요. 코로나 직전에 상당했는데, 제주 여행의 트렌드가 확 바뀌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어요.”
Q. 책방 투어 하는 여행자들이 많이 늘었죠?
“네, 인상적인 변화인데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와서 책방마다 들러서 책을 사고 도장을 찍어가고요. 그런 여행의 방식과 태도가 되게 익숙한 분들이 계세요. 40-50대 분들도 친구들끼리 계모임을 통해 여행을 왔는데 여행 콘셉트가 ‘책방 투어’라 하시더라고요. 여행의 방법이 예전엔 명소 중심, 관광지 중심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카페 투어, 거기에서 나아가 책방 투어가 여행의 일상적인 방식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직전에 책방 투어 형식의 여행이 굉장히 활발했었는데, 코로나로 살짝 주춤해졌긴 해요. 하지만 지금도 ‘티 안 나게’ 여전히 ‘책방 투어’ 하는 손님들을 볼 수 있어요.”
Q. ‘티가 안 나게’라고 하셨는데 알아보시는 거잖아요. 책방 투어 온 손님의 특징이 있나요?
“그 분들은 일단 캐리어를 들고 오셔서 한쪽에 캐리어를 가만히 두신 다음, 저에게 책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물어보시고요. 책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갈 만한 서점을 추천받길 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오늘 서쪽으로 갈 건데, 그쪽에 어떤 서점이 있어요?’라고 묻는 식이에요. 그냥 지나가다 들러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시는 분들에 비해 적극적이시죠.”
Q. 책방 투어 오시는 분들 중에 책방 운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분들도 많으시죠?
“많으세요. 저는 그런 분들 만나면 “왜요 왜. 하지 마세요”라고 일단 말리고 시작해요. 하지만 말린다고 말리는 걸 듣지는 않으시죠. 현실적인 어려움을 미리 넌지시 내비치는 건데 로망과 현실 사이에서 충분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이미 책방 운영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계시더라고요. 더 적극적인 분들은 막 도면을 들고 와서 보고 저희 책방의 벽장 위치도 꼼꼼히 보시고… 그러다가 ‘사실은 제가 책방을 하려고 하는데…’ 하면서 말씀을 걸어오세요.”
Q. 그런 적극적인 분들을 만나면 어떠신가요?
“제게 약간의 도움말을 구하고자 하시는 건데, 처음에는 이곳이 되게 이름 나 있는 책방이지는 않으니 제가 드리는 말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생각을 바꿨는데요, 이름 난 책방들은 결국 한두 군데인 거잖아요. 저같이 매일매일 밥벌이의 괴로움을 안고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요즘에는 조금 더 오픈해서 이야기해 드리는 편이에요.”
Q. 한뼘책방에서 모임도 꾸준히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네, 지속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해 왔어요. 약 3년 정도 김재훈 시인과 함께하는 시, 산문 쓰기 수업을 소규모로 운영해왔죠. 실제적으로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모임이에요. 그러다 보니 지속해서 참여하는 분들이 걸러지고 걸러져서 의도치 않게 ‘소규모’로 운영이 됩니다.”
Q. 장혜령 작가와 함께 하는 ‘라디오 만들기 워크숍’도 꽤 인기가 있는 걸로 아는데요.
“원래는 글쓰기 수업으로 시작했는데, 중간에 라디오 만들기로 모습이 조금 바뀐 거예요. 참여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본인의 얘기를 털어 놓을 수 있게 하는 형식, 그리고 책과 글쓰기로 시작해서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신뢰를 쌓고 교류를 할 수 있는 것들을 원했어요. 장혜령 작가가 방송 작가로 일한 경험과 라디오 워크숍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걸 여기에서 시도해 봤죠. 기대보다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어요. 한 번 참여한 사람들은 한 시즌이 끝나도 떠나질 않으세요. 심지어 다른 여행 일정이 생겨서 제주를 떠나게 되어도, 여행 다녀와서 다시 오겠다 하시곤 정말로 돌아와서 또 그거 하자고 하세요.”
Q. ‘한 번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군요?
“맞아요. 뭘 하든 끝까지 같이 하겠다는 의지가 있으시달까요. 라디오 만들기 워크숍에서도 매주 정해진 책이 있어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니까 주제에 참고하면 좋을 만한 책을 읽어요. 단순한 수다 모임이 아니라 서로가 주제와 관련된 자기 마음의 깊숙한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자리가 되다 보니 인터뷰 기술 같은 것도 필요해서 배우게 되고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끌어내서 그 이야기를 잘 전개시키는 방법 등을 훈련을 통해 쌓아가고 있어요.”
Q. 책방에서 만난 타인들에게 본인의 깊숙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는 건 어떤 걸까요?
“정말 신기한데요, 이 워크숍 이전에는 서로 알지 못하던 분들인데 ‘이런 얘기까지 이렇게 갑자기 한다고?’ 할 정도로 되게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 놓으세요. 최소 몇 년 이상의 신뢰가 쌓여야만 나올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아닐까 하는 것들요. 참여자분들도 신기해하세요. 다들 하시는 말씀이 본인들이 원래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이 모임이 자생적인 커뮤니티적 특성을 가져 가게 되더라고요. 다양한 기관의 지원을 통해서 워크숍을 해왔는데, 그 기간이 끝나도 참여자들이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예요!”
Q. 하하, 시작은 마음대로 하셨지만 끝을 마음대로 하실 수 없는 거군요!
“맞아요. 그래서 쭉 지속해왔는데,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을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면 좋겠다 싶어서 진짜마이크를 켜 보게 됐어요. 우리끼리 인스타그램의 라이브 방송을 켜 놓고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었죠. 그게 ‘한뼘 라디오’예요.”
Q. ‘한뼘 라디오’ 이야기 조금 더 해주세요.
“실제로 진행한 워크숍으로 그냥 우리끼리 끝난 게 아니라, 팟캐스트 서비스 ‘팟빵’에 채널을 개설하고 참여자들 내에서 팀을 나눠서 약 20분짜리 방송을 한 거예요. 글쓰기 워크숍이 장기화되다가, 결과물을 만들어보자는 ‘특훈’ 같은 것이 들어가면서 자생적 로컬 라디오가 생긴 것이랄까요. 이게 계속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 결정이 아니에요. 참여한 분들이 끝을 내질 않으시니까요. 이런 자발적인 모임이 지속되는 공간입니다.”
Q. 이런 모임이나 수업을 꾸준히 하게 된 동력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문화예술이나 책방 관련 지원 사업 등으로 시작했으니까 그것도 중요한 동력이었고요. 저라는 사람이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대신 지속력, 지구력 같은 게 좀 있어요. 되든 안 되든 일단 해 보면 해오던 걸 변형하면서 꾸준하게 해 나가는 거죠. 그리고 참여하시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열망, 인문학적인 열망 같은 것들이 함께 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물론 유명한 작가 모시고 북토크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내는 모임, 이곳이 그런 것을 하는 공간인 것도 좋아요.”
Q. 앞의 이야기들만 들으면 책방 하시는 거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반면, 책방을 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뭔가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는 점이요. 아주 많지는 않지만 오셔서 사진만 찍고 가신다거나,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면서 책은 그냥 읽고만 가시는 분들이 계세요.”
Q. 책방인데 책을 사서 읽지 않고 그냥 읽다 두고 가시는군요?
“네, 더러 있으세요. 초반에는 그런 분들에게 ‘책을 사셔야죠.’라고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옛말에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책을 마치 공공재처럼 다루게 된 인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그냥 조금 보다가 갈 수도 있는 거지’ 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런데 그런 장면들이 누적이 되니까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개인적인 스트레스라기보단 실제적으로 책이 자꾸 헐고요, 새 책을 사러 오는 건데 이미 누군가 본 책이 되는 것 등이요.”
Q. 그렇죠. 책도 상품인데 말이에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봤어요. 우리가 ‘커피를 딱 한 모금만 마실 건데, 커피 그냥 주면 안 돼요?’ 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제주 책방들이 많이 쓰고 있는 카피 중에 ‘책은 작가의 생계입니다’라는 카피가 있어요. 그 말에 굉장히 동의가 됐고요, 더불어 책은 서점의 생계이기도 하죠. ‘내가 왜 내 생계를 걸고 하는 일을 하면서 이걸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손님들에게 책은 구매해서 읽으셔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Q. 손님의 반응은 어떤가요?
“용기 내어 말해보니 의외로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시더라고요. 물론 예전에는 제가 그렇게 말하면 얼굴 표정이 굳는 분들도 간혹 있었어요. ‘도시의 대형 서점에선 다 보고 사는데…’라고 불편함을 표시하신 분들도 있어요. 동네 책방의 구조나 이런 것들에 대해 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는데 요즘은 많은 분들이 당황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해 주세요.”
Q.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가장 좋은 순간이나 좋은 특정 시간대 같은 게 있으세요?
“동향이어서 아침에는 해가 잘 들지만 오후에는 잘 들지 않아요. 하지만 천장에 난 창을 통해 햇볕이 조금 들어오거든요. 오후 3시반~4시반 사이의 이곳 풍경이 모든 계절에 늘 좋아요. 그 시간대엔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한 대여섯명이 앉아서 자기 작업을 하거나 커피 마시면서 산 책을 보곤 하는데 그 시간의 풍경이 참 좋습니다. 또 날이 좋으면 슬라이딩 도어를 다 열거든요. 이 곳이 골목의 삼거리 가장 가운데 있잖아요. 늘 같은 골목 안 같은 자리에 있지만 한 번도 똑 같은 풍경이었던 적이 없어요. 누군가는 ‘주차되어 있는 풍경은 다 늘 똑같지 않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주차되어 있는 차들도 다르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다르고, 앞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풍경도 매일 달라요. 이런 풍경을 가진 공간으로, 이 골목에 오래 있는 서점형 카페이고 싶습니다.”
Q. 말씀을 하시는데 너무 행복한 얼굴이세요. 그래서 이 공간을 하시는군요.
“이 동네가 평균 거주 기간이 한 30년 이상 되는 동네예요. 제주의 구도심이고 토박이 분들이 많이 사는 동네거든요. 사실은 젊은 사람들이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면 영업에 유리한 건 사실이죠. 그런데 저는 여기에 오래 사는 풍경이고 싶어요. 지금 여기 앞 놀이터에 노는 친구들이 20년 후에 와서 ‘나 여기 어릴 때 그네 탈 때 맨날 본 서점 카페인데…’ 하며 이야기할 수 있게요.”
멋진 그림이네요. 오래도록 행복하고 정겨운 풍경이 되실 것 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구제주 이도이동 골목 안, 두 개의 이름을 가진 한 공간이 있다. 책방인 ‘한뼘책방’과 브런치 카페 ‘금요일의 아침, 조금’. 공간의 이름을 들었을 때, 공간 운영자에 대한 흥미로움이 일었다. 좁은 골목 안, 세 갈래 길 한 중간에 위치한 이 공간. ‘내가 사는 골목 안에 그대로 옮겨다 두고 싶어.’라는 생각이 든다. 화덕에서 구운 피자와 파스타 먹으러 가기, 책을 사고 커피 한잔하기, 심심한 저녁 주민들이 모여 다양한 기획과 활동을 하는 모임에 참여하기…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뼘책방’과 ‘금요일의 아침, 조금’을 운영하는 조은영입니다.”
Q. 운영하시는 공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금요일 아침, 조금’은 식사와 커피 메뉴가 있는 브런치 카페예요. ‘한뼘책방’이라는 하나의 이름이 더 있는데, 이름만으로도 아시겠지만 책을 함께 취급하고 있습니다.”
Q. 한뼘책방은 주로 어떤 류의 책을 취급하나요?
“일단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 위주인데요. 문학, 에세이, 예술, 사회 분야의 책들이에요. 그런데 요즘 ‘큐레이션을 조금 더 날카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한뼘책방이 ‘시 전문 책방’, ‘소설 전문’, ‘그림책 전문’ 이런 식으로 특화된 분야를 딱 내세우지 못하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키워드 중심의 큐레이션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키워드 중심의 큐레이션’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보통 장르별로 특화된 동네서점들이 많은데, 간혹 ‘4.3’이나 ‘여성’ 등 주요 키워드에 맞춰서 그에 관련된 도서들을 갖추고 운영하는 곳들도 있어요. 저도 이런 식으로 보다 날카롭고 세분화된 주제나 분야를 골라 서가를 운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현재는 과도기랄까요.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책, 사람들도 같이 좋아했으면 좋겠는 책들이 갖춰져 있고요, 의식적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 ‘자연과학’이나 ‘환경’ 분야의 책들도 조금 갖추고 있어요.”
Q. 의식적으로 자연과학이나 환경 분야에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은, 그것이 운영자의 ‘원래’ 관심사는 아닌 거군요?
“이렇게 말하면 좀 거친 이분법이긴 하지만, 저는 소위 말하는 ‘문과형 인간’이예요. 그러다 보니 주로 문학, 사회 분야의 책들을 편식하여 읽어왔는데, 나이가 들면서 약간 후회가 되더라고요. 자연과학적인 시각이나 태도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거나 하는 것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게다가 요즘에는 그런 분야도 에세이 형식으로 읽기 쉽게 많이 나오고 있어요. 알아야 했으나 그동안 무심히 지나가던 어떤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느낌이 들어서 요즘엔 제가 잘 보지 않았던 분야의 책들을 의식적으로 가져다 놓고 있어요.”
Q. 동네서점인 ‘한뼘책방’과 카페 겸 브런치 가게 ‘금요일의 아침, 조금’의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시작은 카페 요식업이 먼저였어요. 더 이전에는 제주로 오기 전 출판 잡지 쪽 일을 했고요. 제주에 와서 살게 되면서 프리랜서로 원래 하던 일들을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했죠. 그러다 하던 일을 접고 제주에서 생업으로 카페 겸 식당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원래 하던 일에 미련을 가지기 마련이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동시에 든 생각은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좋아한다고 해서 꼭 만들거나 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어요. 좋아하는 것을 파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팔기 위해서 읽게 되고, 제가 좋아하는 책들을 갖출 수 있다는 생각에 가게 한 켠에 생뚱맞게 서가를 조그맣게 마련했어요.”
Q. 그게 ‘한뼘책방’의 시작이군요?
“네 맞아요. 팔기 위해 들여논 책이 10종도 안 됐어요. 그 작은 서가가 정말 한 뼘만 하게 작았어요. 그게 ‘한뼘책방’의 시작입니다. 한뼘책방이라는 게 그 당시의 제 마음 상태이기도 했어요. 보통 ‘책을 읽어야지’ 하는 책에 대한 마음의 짐 같은 것을 누구나 한 뼘 만하게 가지고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한뼘책방’은 물리적인 사이즈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고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가지고 있는 서가의 크기이기도 해요.”
Q. 그럼, 이번엔 ‘금요일의 아침, 조금’ 이름에 대한 의문을 풀어야겠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원래 저희 부부가 정했던 이름은 ‘조금’이었어요. 제가 ‘조 씨’ 이고요, 남편이 ‘김 씨’거든요! ‘조금’일수도 있었는데 여기서 조금만 더 설레는 이름으로 정해보자고 생각하다가 ‘금요일의 아침’이 붙은 거예요. ‘금요일 아침’의 그 아침만 지나면 다음에 오는 아침은 주말이잖아요. 주말을 기다리는 설레임 같은 것들, 그런 시간에 대한 느낌을 더해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Q. 서울에서 출판 잡지 쪽 일을 하시다가 제주에 오시게 된 계기는 뭔가요?
“속아서 왔어요.”
Q. 네? 하하, 좀 더 설명을 해 주세요.
“남편이 한 3년만 제주에서 살다가 다시 올라가자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여기 살고 있네요.”
Q. 이곳을 찾는 손님은 어떤 분들인가요?
“단골분들은 동네 주민분들이 절반 정도되고요, 이곳에서 제가 모임을 꾸준하게 하고 있어서 모임 때문에 외부에서 꾸준히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책방 투어 지도’를 들고 가족 단위나 친구와 함께 책방을 찾아오는 여행객들도 있어요. 코로나 직전에 상당했는데, 제주 여행의 트렌드가 확 바뀌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어요.”
Q. 책방 투어 하는 여행자들이 많이 늘었죠?
“네, 인상적인 변화인데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와서 책방마다 들러서 책을 사고 도장을 찍어가고요. 그런 여행의 방식과 태도가 되게 익숙한 분들이 계세요. 40-50대 분들도 친구들끼리 계모임을 통해 여행을 왔는데 여행 콘셉트가 ‘책방 투어’라 하시더라고요. 여행의 방법이 예전엔 명소 중심, 관광지 중심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카페 투어, 거기에서 나아가 책방 투어가 여행의 일상적인 방식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직전에 책방 투어 형식의 여행이 굉장히 활발했었는데, 코로나로 살짝 주춤해졌긴 해요. 하지만 지금도 ‘티 안 나게’ 여전히 ‘책방 투어’ 하는 손님들을 볼 수 있어요.”
Q. ‘티가 안 나게’라고 하셨는데 알아보시는 거잖아요. 책방 투어 온 손님의 특징이 있나요?
“그 분들은 일단 캐리어를 들고 오셔서 한쪽에 캐리어를 가만히 두신 다음, 저에게 책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물어보시고요. 책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갈 만한 서점을 추천받길 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오늘 서쪽으로 갈 건데, 그쪽에 어떤 서점이 있어요?’라고 묻는 식이에요. 그냥 지나가다 들러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시는 분들에 비해 적극적이시죠.”
Q. 책방 투어 오시는 분들 중에 책방 운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분들도 많으시죠?
“많으세요. 저는 그런 분들 만나면 “왜요 왜. 하지 마세요”라고 일단 말리고 시작해요. 하지만 말린다고 말리는 걸 듣지는 않으시죠. 현실적인 어려움을 미리 넌지시 내비치는 건데 로망과 현실 사이에서 충분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이미 책방 운영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계시더라고요. 더 적극적인 분들은 막 도면을 들고 와서 보고 저희 책방의 벽장 위치도 꼼꼼히 보시고… 그러다가 ‘사실은 제가 책방을 하려고 하는데…’ 하면서 말씀을 걸어오세요.”
Q. 그런 적극적인 분들을 만나면 어떠신가요?
“제게 약간의 도움말을 구하고자 하시는 건데, 처음에는 이곳이 되게 이름 나 있는 책방이지는 않으니 제가 드리는 말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생각을 바꿨는데요, 이름 난 책방들은 결국 한두 군데인 거잖아요. 저같이 매일매일 밥벌이의 괴로움을 안고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요즘에는 조금 더 오픈해서 이야기해 드리는 편이에요.”
Q. 한뼘책방에서 모임도 꾸준히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네, 지속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해 왔어요. 약 3년 정도 김재훈 시인과 함께하는 시, 산문 쓰기 수업을 소규모로 운영해왔죠. 실제적으로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모임이에요. 그러다 보니 지속해서 참여하는 분들이 걸러지고 걸러져서 의도치 않게 ‘소규모’로 운영이 됩니다.”
Q. 장혜령 작가와 함께 하는 ‘라디오 만들기 워크숍’도 꽤 인기가 있는 걸로 아는데요.
“원래는 글쓰기 수업으로 시작했는데, 중간에 라디오 만들기로 모습이 조금 바뀐 거예요. 참여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본인의 얘기를 털어 놓을 수 있게 하는 형식, 그리고 책과 글쓰기로 시작해서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신뢰를 쌓고 교류를 할 수 있는 것들을 원했어요. 장혜령 작가가 방송 작가로 일한 경험과 라디오 워크숍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걸 여기에서 시도해 봤죠. 기대보다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어요. 한 번 참여한 사람들은 한 시즌이 끝나도 떠나질 않으세요. 심지어 다른 여행 일정이 생겨서 제주를 떠나게 되어도, 여행 다녀와서 다시 오겠다 하시곤 정말로 돌아와서 또 그거 하자고 하세요.”
Q. ‘한 번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군요?
“맞아요. 뭘 하든 끝까지 같이 하겠다는 의지가 있으시달까요. 라디오 만들기 워크숍에서도 매주 정해진 책이 있어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니까 주제에 참고하면 좋을 만한 책을 읽어요. 단순한 수다 모임이 아니라 서로가 주제와 관련된 자기 마음의 깊숙한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자리가 되다 보니 인터뷰 기술 같은 것도 필요해서 배우게 되고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끌어내서 그 이야기를 잘 전개시키는 방법 등을 훈련을 통해 쌓아가고 있어요.”
Q. 책방에서 만난 타인들에게 본인의 깊숙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는 건 어떤 걸까요?
“정말 신기한데요, 이 워크숍 이전에는 서로 알지 못하던 분들인데 ‘이런 얘기까지 이렇게 갑자기 한다고?’ 할 정도로 되게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 놓으세요. 최소 몇 년 이상의 신뢰가 쌓여야만 나올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아닐까 하는 것들요. 참여자분들도 신기해하세요. 다들 하시는 말씀이 본인들이 원래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이 모임이 자생적인 커뮤니티적 특성을 가져 가게 되더라고요. 다양한 기관의 지원을 통해서 워크숍을 해왔는데, 그 기간이 끝나도 참여자들이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예요!”
Q. 하하, 시작은 마음대로 하셨지만 끝을 마음대로 하실 수 없는 거군요!
“맞아요. 그래서 쭉 지속해왔는데,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을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면 좋겠다 싶어서 진짜마이크를 켜 보게 됐어요. 우리끼리 인스타그램의 라이브 방송을 켜 놓고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었죠. 그게 ‘한뼘 라디오’예요.”
Q. ‘한뼘 라디오’ 이야기 조금 더 해주세요.
“실제로 진행한 워크숍으로 그냥 우리끼리 끝난 게 아니라, 팟캐스트 서비스 ‘팟빵’에 채널을 개설하고 참여자들 내에서 팀을 나눠서 약 20분짜리 방송을 한 거예요. 글쓰기 워크숍이 장기화되다가, 결과물을 만들어보자는 ‘특훈’ 같은 것이 들어가면서 자생적 로컬 라디오가 생긴 것이랄까요. 이게 계속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 결정이 아니에요. 참여한 분들이 끝을 내질 않으시니까요. 이런 자발적인 모임이 지속되는 공간입니다.”
Q. 이런 모임이나 수업을 꾸준히 하게 된 동력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문화예술이나 책방 관련 지원 사업 등으로 시작했으니까 그것도 중요한 동력이었고요. 저라는 사람이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대신 지속력, 지구력 같은 게 좀 있어요. 되든 안 되든 일단 해 보면 해오던 걸 변형하면서 꾸준하게 해 나가는 거죠. 그리고 참여하시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열망, 인문학적인 열망 같은 것들이 함께 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물론 유명한 작가 모시고 북토크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내는 모임, 이곳이 그런 것을 하는 공간인 것도 좋아요.”
Q. 앞의 이야기들만 들으면 책방 하시는 거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반면, 책방을 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뭔가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는 점이요. 아주 많지는 않지만 오셔서 사진만 찍고 가신다거나,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면서 책은 그냥 읽고만 가시는 분들이 계세요.”
Q. 책방인데 책을 사서 읽지 않고 그냥 읽다 두고 가시는군요?
“네, 더러 있으세요. 초반에는 그런 분들에게 ‘책을 사셔야죠.’라고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옛말에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책을 마치 공공재처럼 다루게 된 인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그냥 조금 보다가 갈 수도 있는 거지’ 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런데 그런 장면들이 누적이 되니까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개인적인 스트레스라기보단 실제적으로 책이 자꾸 헐고요, 새 책을 사러 오는 건데 이미 누군가 본 책이 되는 것 등이요.”
Q. 그렇죠. 책도 상품인데 말이에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봤어요. 우리가 ‘커피를 딱 한 모금만 마실 건데, 커피 그냥 주면 안 돼요?’ 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제주 책방들이 많이 쓰고 있는 카피 중에 ‘책은 작가의 생계입니다’라는 카피가 있어요. 그 말에 굉장히 동의가 됐고요, 더불어 책은 서점의 생계이기도 하죠. ‘내가 왜 내 생계를 걸고 하는 일을 하면서 이걸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손님들에게 책은 구매해서 읽으셔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Q. 손님의 반응은 어떤가요?
“용기 내어 말해보니 의외로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시더라고요. 물론 예전에는 제가 그렇게 말하면 얼굴 표정이 굳는 분들도 간혹 있었어요. ‘도시의 대형 서점에선 다 보고 사는데…’라고 불편함을 표시하신 분들도 있어요. 동네 책방의 구조나 이런 것들에 대해 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는데 요즘은 많은 분들이 당황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해 주세요.”
Q.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가장 좋은 순간이나 좋은 특정 시간대 같은 게 있으세요?
“동향이어서 아침에는 해가 잘 들지만 오후에는 잘 들지 않아요. 하지만 천장에 난 창을 통해 햇볕이 조금 들어오거든요. 오후 3시반~4시반 사이의 이곳 풍경이 모든 계절에 늘 좋아요. 그 시간대엔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한 대여섯명이 앉아서 자기 작업을 하거나 커피 마시면서 산 책을 보곤 하는데 그 시간의 풍경이 참 좋습니다. 또 날이 좋으면 슬라이딩 도어를 다 열거든요. 이 곳이 골목의 삼거리 가장 가운데 있잖아요. 늘 같은 골목 안 같은 자리에 있지만 한 번도 똑 같은 풍경이었던 적이 없어요. 누군가는 ‘주차되어 있는 풍경은 다 늘 똑같지 않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주차되어 있는 차들도 다르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다르고, 앞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풍경도 매일 달라요. 이런 풍경을 가진 공간으로, 이 골목에 오래 있는 서점형 카페이고 싶습니다.”
Q. 말씀을 하시는데 너무 행복한 얼굴이세요. 그래서 이 공간을 하시는군요.
“이 동네가 평균 거주 기간이 한 30년 이상 되는 동네예요. 제주의 구도심이고 토박이 분들이 많이 사는 동네거든요. 사실은 젊은 사람들이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면 영업에 유리한 건 사실이죠. 그런데 저는 여기에 오래 사는 풍경이고 싶어요. 지금 여기 앞 놀이터에 노는 친구들이 20년 후에 와서 ‘나 여기 어릴 때 그네 탈 때 맨날 본 서점 카페인데…’ 하며 이야기할 수 있게요.”
멋진 그림이네요. 오래도록 행복하고 정겨운 풍경이 되실 것 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