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답고 유일한 빛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랄라밀랍초 룰루&랄라
“룰루와 랄라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버려진 것들, 떠내려온 것들, 기능과 생명이 다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가져다 180년 된 구옥을 직접 고쳐 생명을 불어넣었다. 자급자족의 삶은 이렇게 삼 개월 만에 시작됐다. 그들의 삶과 그들이 만든 밀랍초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위로와 응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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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두 분 소개 부탁드립니다.
랄라 : 저는 랄라예요. 서울에서 마케팅, 기획 등의 일을 오래 하다가 제주에 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 남편이자 랄라밀랍초를 함께 꾸려가고 있는 룰루는 비디오 아티스트였어요. 부산과 태국에서 살다가 제주로 오게 됐죠. 둘 다 각각의 이유로 살던 곳을 떠나 우리가 원하는 삶을 실현해 보려고 제주에 왔는데 지금은 둘이 함께 밀랍초 작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만든 밀랍초는 ‘랄라밀랍초’라는 브랜드로 판매중입니다. 각각의 초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작품이예요. 저희 공간인 ‘랄라밀랍초 아뜰리에 촉’이 쇼룸이나 일반 매장이 아닌, ‘작업실’인 이유이기도 해요.

Q. 밀랍초를 작업하시는데, 예전에 하셨던 일들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여요.
룰루 : 밀랍초를 만드는 일도 예술적 감성을 담아내는 조형작업이라 제 본래의 일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천재적이라 생각하는데, 게을러요. 그래서 제가 만든 작품을 생계로 연결하는 데까지는 힘과 아이디어가 부족했어요. 하지만 마케팅 기획 쪽으로 오랜 경력이 있던 랄라는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있고 성실하기까지 했어요. 제가 가진 능력과 랄라의 능력을 합쳐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둘이 힘을 합치면 누구의 도움 없이도 처음부터 끝까지 해 나갈 수 있는 게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하게 된 것이 ‘랄라밀랍초’예요.
Q. 예술 작품으로서의 밀랍초를 만들고 파시는 거군요. 그럼 랄라는 이것을 상품화해 알리고 파는 데 주력하시나요?
랄라 : 저도 함께 밀랍초를 디자인하고 작업해요. 저도 원래 미술을 전공했거든요. 물론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은 주로 제가 담당합니다. 자연을 좋아해서, 제주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그대로 밀랍초 디자인으로 옮겼어요.

Q. 예술가와 마케터가 만났을 때,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것 같은데 많은 것 중 밀랍초를 하게 된계기가 있나요?
룰루 : 저는 제 예술에 대한 자긍심이 있고, 유일한 것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새로운 세상의 빛을 만들어내자. 그리고 유일한 우리의 것을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했을 때 밀랍초가 떠올랐어요. 작가로서의 성취감을 저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라, 랄라와 함께 이루는 성취감으로 가져가고 싶었죠.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의 하나가 ‘밀랍초’였고, 저희 둘의 재능을 합친 브랜드가 바로 ‘랄라밀랍초’입니다.
랄라: 자급자족하는 삶이 결국 제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예요.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생각했을 때,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목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건 성에 차지 않았어요. 저희가 만드는 것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담아내고, 저희가 꿈꾸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여러 고민을 하던 중 언젠가 보았던 밀랍초가 생각났어요. 어떤 다도 자리에서 선생님이 밀랍초를 하나 꺼내어 태우셨는데, 그 밀랍초가 오롯이 타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꼭 저런 모습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Q. 밀랍초를 만들면서 주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랄라 : 저희는 단순히 초를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밀랍을 이용해 ‘가장 아름다운 빛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빛을 통해 자연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사람들이 느끼길 바라죠. 밀랍 자체가 생태계 순환에 없어서는 안 될 꿀벌들이 만들어 준 것이기도 하고요. 랄라밀랍초는 제주의 자연이 준 영감으로 디자인된 초예요. 그리고 제가 룰루를 처음 만났던 룰루의 ‘게르’ 안에는 늘 밀랍초가 있었어요. 초를 두고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했죠. 저는 지금도 초 앞의 룰루가 생각나요. 어쩜 룰루와 저를 연결해 준 게 초일지도 몰라요. 초가 있으면 좀 진솔해지고, 어색함도 사라지고, 따뜻한 분위기도 더해지니까요. 알게 모르게 초가 우리의 중요한 순간들에 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초를 만들게 된 게 아닌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드네요!


Q. ‘게르’에서 초를 두고 만나셨다고요. 몽골식 게르 텐트 말씀하시는 건가요?
룰루 : 네, 제가 제주 한 해변가에 게르 텐트를 치고 지낸 적이 있거든요. 그때 그곳에서 지금의 제 아내가 된 랄라를 만났어요. 첫 만남에 대뜸 저랑 사진을 찍자고 하는 거예요. 저도 뭐 그러자고 했죠. 찍자 찍어. 하하
Q. 그럼 룰루가 살던 게르에 랄라는 어떻게 가게 되었어요? 만남 자체가 신기하네요.
랄라 : 저는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장기 투숙 중이었어요. 게스트하우스에 안 쓰던 바(bar)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팝업 술집을 열었죠. 그런데 태풍이 오던 날, 룰루가 태풍을 피해 게스트하우스에 잠깐 오게 되었어요. 그때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죠. 태풍이 지나간 후, 룰루는 게르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아침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타주더라고요. “저 사람 뭐야?” 싶었는데 저도 모르게 끌렸나 봐요. 함께 사진 찍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제가 처음 한 말이 “저랑 사진 한 장 찍어요!” 였어요.
Q. 게르에 산 룰루도 신기한데, 랄라는 어떻게 게스트하우스에서 팝업 술집을 하게 되었나요?
랄라 : 마케팅 일을 하는 동안 즐거웠어요. 하지만 목 말랐어요. 처음부터 제 손으로 하는 일이 아니었고, 누군가가 만들어 둔 것을 잘 포장하고 효과적으로 알리는 일이었으니까요. 100프로 제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다 정리하고 제주로 와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고민했을 때, 하던 일이 마케팅이다 보니 자꾸 그쪽으로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거예요. 다른 것을 해 보려고 제주에 왔는데, 결국 여기서도 제가 살아온 틀 안에서 맴돌게 되는 건가 싶었죠. 제가 팝업 술집을 연 이유는 또렷해요. “나랑 다른 범주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100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러면 나도 무언가 내가 해보지 못한 것, 알아채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라는 생각이었어요. 뭘 해야 할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으면 열심히 놀아보세요. 자기가 해 온 것에 자기를 가두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것으로 채우는 시간도 필요하죠.
Q. 팝업 술집을 했던 랄라, 지금은 밀랍초를 만들고 있네요.
랄라 : 네, 지금 저는 이렇게 밀랍초를 만들고 있죠. 물론 이것을 판매해 생계를 해야 하는 생활인이기도 하니 제 원래 영역이던 마케팅도 직접 하고요. 랄라밀랍초는 그냥 저희 삶 그대로예요. 그래서 마케팅도 너무 자연스러워요. 그냥 우리를 보여주면 되니까요. 내 일을 한다는 건 그냥 내 삶을 산다는 거와 같아요.

Q. 밀랍초 작업실과 체험 공간인 ‘랄라밀랍초 아틀리에 촉’은 제주 구옥을 직접 고치신 거라고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게 되었나요? 그리고 구옥을 고친 과정도 궁금해요.
랄라 : 서울 삶을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오면서 했던 생각이 있어요. 더 이상 자연에 피해를 주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과, 타인에게 좌지우지되지 않고 오롯이 내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급자족하는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실천해 보고 싶었죠. 개발되지 않은 제주 시골 장소들을 선택했고 180년된 돌창고를 직접 고치게 되었어요. 이 공간을 만들면서 자연을 해치는 것은 최소화하고 웬만한 재료는 다 버려진 것에서 구했어요. 내부 벽에 덧댄 나무 판자들은 제주에 흔한 ‘귤 상자’를 쪼개 쓴 것이고요, 등받이나 초 걸이 등 디자인 선반은 해변으로 떠내려온 나뭇가지들을 직접 주워서 만들었어요. 돈 주고 구매한 것이라면 유일하게 ‘초멍’할 때 앉을 수 있도록 준비해둔 의자 정도인데 중고 거래로 가져왔죠. 이렇게 모습을 갖추는데 꼬박 석 달이 걸렸어요.
룰루 : 사실 내부를 고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이 집을 찾아낸 과정에 비하면요. 밀랍으로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온도와 시간이거든요. 사람들이 불쑥불쑥 찾아오면 온도와 시간이 유지되지 않아서 작업이 잘 될 수가 없어요. 작업에 방해도 되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불쑥 찾아 들어올 수 없도록 길 안쪽에 숨어 있는 집을 찾아야 했어요. 또, 밀랍초가 빛과 열에 약하니 북향 집이 좋았어요. 이 조건에 맞는 집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웠던지, 제주를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죠. 이 집은 거의 폐허 수준이었지만 우리가 찾던 조건에 꼭 맞았어요. 귤 밭 한가운데 있어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초를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어요.


Q. 사실 ‘초멍’이라는 것을 랄라밀랍초에서 처음 들었거든요. 작업실 바깥 건물은 ‘초멍’ 하는 공간이라고요.
룰루 :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도 향초를 쓰긴 하지만, 유럽 사람들처럼 늘 초를 쓰지는 않죠. 그래서 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직접 와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거예요. 천연 밀랍 100%로 만들고 다른 인공 재료는 하나도 넣지 않아요. 밀랍초 하나 피우고 있으면 좋은 꿀향이 은은하게 나고 프로폴리스 성분도 나와서 편안해집니다. 세상 속 화려하고 정신없는 빛들을 피해 작은 촛불의 빛 하나에 집중해보는 시간은 누구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요. '불멍'은 장작을 떼거나 피우는 큰 준비와 그에 맞는 큰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밀랍초 하나로 가능한 '초멍'은 손쉽고 깔끔해서 누구나 편히 즐길 수 있죠.
Q. 밀랍초를 만들면서 행복하신가요?
룰루 : 그럼요. 저희 둘이서 새로운 세상의 빛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니까요. 저는 우리 일에서 자긍심을 느껴요. 세상에 많은 초 작업자들이 있겠지만 저희가 만든 초는 유일해요. 유일한 것을 만들고 있기에 작가로서도 아주 기분이 좋아요.
랄라 : 룰루는 오늘 집 뒤쪽 대나무로 빨대도 직접 만들었어요. 그냥 일상이 핸드메이드고 작품이자 제품이예요. 앞으로는 천연 염색도 해보고 다양한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재미있을 거 같지 않나요?
Q. 제주에서의 삶, 행복하시죠? 도시에서의 삶과 어떻게 다른가요?
룰루 : 너무 행복하죠. 자본이 모든 것인 세상에서 벗어나 더 멋있는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사실 도시에선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하기보다, 적은 돈으로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실제로 해 보니 만족도가 높아요. 지금 하는 일이 요즘 이슈인 환경 문제와 관련이 있고, 요즘 트렌드는 핸드메이드니까... 이런 개념을 짜깁기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를 찾아서 만든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과 삶 사이에 불협화음이 없어요.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를 제품으로 만들어낸 것뿐이예요.
Q. 그 다음엔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룰루 : ‘그 다음엔 뭘 하면 될까?’ 하는 고민은 없어요. 우리 삶과 브랜드가 일치하니까요. 그 다음은 우리가 재미있어 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죠. 우리의 취향, 생활방식, 동선에 맞게 만드니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요. 부자연스러운 게 없고요, 매시간 매 순간을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지금도 그렇게 사니 그 다음도 당연히 그러겠죠.
Q. 요즘 조직이나 회사를 벗어나거나 혹은 사이드로 ‘내 일을 찾아 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랄지 로망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그런 것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해 주실 말씀 있으세요?
랄라 : 기존에 없는 나만의 것을 하고 싶다면 100프로 내 안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다른 생각이나 방식을 가진 분도 계시겠지만, 제 경험을 통해 저는 그래야 한다고 확신해요. 나라는 사람 자체가 고유하기 때문에 본인 안에서 출발하면 그 자체로 고유한 것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잘나가는 브랜드 성공 사례 같은 것을 먼저 보거나, 정보 수집해서 짜깁기하지 말고 본인에게 시간을 쏟고 자신을 아는 것,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알아내면 분명히 그것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걸 알릴 방법도 요즘엔 너무 다양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마디 해주세요.
랄라 : 이곳은 쇼룸도 매장도 아닙니다. 하지만 180년된 제주 서쪽의 돌창고에서, 세상의 빛이 꺼진 시간 동안, 밀랍초로 여러분의 작은 빛을 켜 보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기다릴게요! 오시든 안 오시든 저희는 저희의 삶을 살아가겠지만요, 하하. 늘 열려 있는 오픈된 공간은 아니지만 오시면 저희와 이야기도 나누시고 밀랍초도 분명 좋아하게 되실 거예요.
룰루 : 맞아요,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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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와 랄라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버려진 것들, 떠내려온 것들, 기능과 생명이 다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가져다 180년 된 구옥을 직접 고쳐 생명을 불어넣었다. 자급자족의 삶은 이렇게 삼 개월 만에 시작됐다. 그들의 삶과 그들이 만든 밀랍초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위로와 응원이 될 것이다.”
Q. 두 분 소개 부탁드립니다.
랄라 : 저는 랄라예요. 서울에서 마케팅, 기획 등의 일을 오래 하다가 제주에 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 남편이자 랄라밀랍초를 함께 꾸려가고 있는 룰루는 비디오 아티스트였어요. 부산과 태국에서 살다가 제주로 오게 됐죠. 둘 다 각각의 이유로 살던 곳을 떠나 우리가 원하는 삶을 실현해 보려고 제주에 왔는데 지금은 둘이 함께 밀랍초 작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만든 밀랍초는 ‘랄라밀랍초’라는 브랜드로 판매중입니다. 각각의 초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작품이예요. 저희 공간인 ‘랄라밀랍초 아뜰리에 촉’이 쇼룸이나 일반 매장이 아닌, ‘작업실’인 이유이기도 해요.
Q. 밀랍초를 작업하시는데, 예전에 하셨던 일들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여요.
룰루 : 밀랍초를 만드는 일도 예술적 감성을 담아내는 조형작업이라 제 본래의 일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천재적이라 생각하는데, 게을러요. 그래서 제가 만든 작품을 생계로 연결하는 데까지는 힘과 아이디어가 부족했어요. 하지만 마케팅 기획 쪽으로 오랜 경력이 있던 랄라는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있고 성실하기까지 했어요. 제가 가진 능력과 랄라의 능력을 합쳐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둘이 힘을 합치면 누구의 도움 없이도 처음부터 끝까지 해 나갈 수 있는 게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하게 된 것이 ‘랄라밀랍초’예요.
Q. 예술 작품으로서의 밀랍초를 만들고 파시는 거군요. 그럼 랄라는 이것을 상품화해 알리고 파는 데 주력하시나요?
랄라 : 저도 함께 밀랍초를 디자인하고 작업해요. 저도 원래 미술을 전공했거든요. 물론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은 주로 제가 담당합니다. 자연을 좋아해서, 제주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그대로 밀랍초 디자인으로 옮겼어요.
Q. 예술가와 마케터가 만났을 때,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것 같은데 많은 것 중 밀랍초를 하게 된계기가 있나요?
룰루 : 저는 제 예술에 대한 자긍심이 있고, 유일한 것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새로운 세상의 빛을 만들어내자. 그리고 유일한 우리의 것을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했을 때 밀랍초가 떠올랐어요. 작가로서의 성취감을 저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라, 랄라와 함께 이루는 성취감으로 가져가고 싶었죠.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의 하나가 ‘밀랍초’였고, 저희 둘의 재능을 합친 브랜드가 바로 ‘랄라밀랍초’입니다.
랄라: 자급자족하는 삶이 결국 제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예요.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생각했을 때,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목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건 성에 차지 않았어요. 저희가 만드는 것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담아내고, 저희가 꿈꾸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여러 고민을 하던 중 언젠가 보았던 밀랍초가 생각났어요. 어떤 다도 자리에서 선생님이 밀랍초를 하나 꺼내어 태우셨는데, 그 밀랍초가 오롯이 타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꼭 저런 모습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Q. 밀랍초를 만들면서 주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랄라 : 저희는 단순히 초를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밀랍을 이용해 ‘가장 아름다운 빛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빛을 통해 자연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사람들이 느끼길 바라죠. 밀랍 자체가 생태계 순환에 없어서는 안 될 꿀벌들이 만들어 준 것이기도 하고요. 랄라밀랍초는 제주의 자연이 준 영감으로 디자인된 초예요. 그리고 제가 룰루를 처음 만났던 룰루의 ‘게르’ 안에는 늘 밀랍초가 있었어요. 초를 두고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했죠. 저는 지금도 초 앞의 룰루가 생각나요. 어쩜 룰루와 저를 연결해 준 게 초일지도 몰라요. 초가 있으면 좀 진솔해지고, 어색함도 사라지고, 따뜻한 분위기도 더해지니까요. 알게 모르게 초가 우리의 중요한 순간들에 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초를 만들게 된 게 아닌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드네요!
Q. ‘게르’에서 초를 두고 만나셨다고요. 몽골식 게르 텐트 말씀하시는 건가요?
룰루 : 네, 제가 제주 한 해변가에 게르 텐트를 치고 지낸 적이 있거든요. 그때 그곳에서 지금의 제 아내가 된 랄라를 만났어요. 첫 만남에 대뜸 저랑 사진을 찍자고 하는 거예요. 저도 뭐 그러자고 했죠. 찍자 찍어. 하하
Q. 그럼 룰루가 살던 게르에 랄라는 어떻게 가게 되었어요? 만남 자체가 신기하네요.
랄라 : 저는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장기 투숙 중이었어요. 게스트하우스에 안 쓰던 바(bar)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팝업 술집을 열었죠. 그런데 태풍이 오던 날, 룰루가 태풍을 피해 게스트하우스에 잠깐 오게 되었어요. 그때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죠. 태풍이 지나간 후, 룰루는 게르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아침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타주더라고요. “저 사람 뭐야?” 싶었는데 저도 모르게 끌렸나 봐요. 함께 사진 찍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제가 처음 한 말이 “저랑 사진 한 장 찍어요!” 였어요.
Q. 게르에 산 룰루도 신기한데, 랄라는 어떻게 게스트하우스에서 팝업 술집을 하게 되었나요?
랄라 : 마케팅 일을 하는 동안 즐거웠어요. 하지만 목 말랐어요. 처음부터 제 손으로 하는 일이 아니었고, 누군가가 만들어 둔 것을 잘 포장하고 효과적으로 알리는 일이었으니까요. 100프로 제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다 정리하고 제주로 와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고민했을 때, 하던 일이 마케팅이다 보니 자꾸 그쪽으로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거예요. 다른 것을 해 보려고 제주에 왔는데, 결국 여기서도 제가 살아온 틀 안에서 맴돌게 되는 건가 싶었죠. 제가 팝업 술집을 연 이유는 또렷해요. “나랑 다른 범주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100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러면 나도 무언가 내가 해보지 못한 것, 알아채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라는 생각이었어요. 뭘 해야 할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으면 열심히 놀아보세요. 자기가 해 온 것에 자기를 가두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것으로 채우는 시간도 필요하죠.
Q. 팝업 술집을 했던 랄라, 지금은 밀랍초를 만들고 있네요.
랄라 : 네, 지금 저는 이렇게 밀랍초를 만들고 있죠. 물론 이것을 판매해 생계를 해야 하는 생활인이기도 하니 제 원래 영역이던 마케팅도 직접 하고요. 랄라밀랍초는 그냥 저희 삶 그대로예요. 그래서 마케팅도 너무 자연스러워요. 그냥 우리를 보여주면 되니까요. 내 일을 한다는 건 그냥 내 삶을 산다는 거와 같아요.
Q. 밀랍초 작업실과 체험 공간인 ‘랄라밀랍초 아틀리에 촉’은 제주 구옥을 직접 고치신 거라고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게 되었나요? 그리고 구옥을 고친 과정도 궁금해요.
랄라 : 서울 삶을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오면서 했던 생각이 있어요. 더 이상 자연에 피해를 주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과, 타인에게 좌지우지되지 않고 오롯이 내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급자족하는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실천해 보고 싶었죠. 개발되지 않은 제주 시골 장소들을 선택했고 180년된 돌창고를 직접 고치게 되었어요. 이 공간을 만들면서 자연을 해치는 것은 최소화하고 웬만한 재료는 다 버려진 것에서 구했어요. 내부 벽에 덧댄 나무 판자들은 제주에 흔한 ‘귤 상자’를 쪼개 쓴 것이고요, 등받이나 초 걸이 등 디자인 선반은 해변으로 떠내려온 나뭇가지들을 직접 주워서 만들었어요. 돈 주고 구매한 것이라면 유일하게 ‘초멍’할 때 앉을 수 있도록 준비해둔 의자 정도인데 중고 거래로 가져왔죠. 이렇게 모습을 갖추는데 꼬박 석 달이 걸렸어요.
룰루 : 사실 내부를 고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이 집을 찾아낸 과정에 비하면요. 밀랍으로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온도와 시간이거든요. 사람들이 불쑥불쑥 찾아오면 온도와 시간이 유지되지 않아서 작업이 잘 될 수가 없어요. 작업에 방해도 되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불쑥 찾아 들어올 수 없도록 길 안쪽에 숨어 있는 집을 찾아야 했어요. 또, 밀랍초가 빛과 열에 약하니 북향 집이 좋았어요. 이 조건에 맞는 집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웠던지, 제주를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죠. 이 집은 거의 폐허 수준이었지만 우리가 찾던 조건에 꼭 맞았어요. 귤 밭 한가운데 있어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초를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어요.
Q. 사실 ‘초멍’이라는 것을 랄라밀랍초에서 처음 들었거든요. 작업실 바깥 건물은 ‘초멍’ 하는 공간이라고요.
룰루 :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도 향초를 쓰긴 하지만, 유럽 사람들처럼 늘 초를 쓰지는 않죠. 그래서 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직접 와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거예요. 천연 밀랍 100%로 만들고 다른 인공 재료는 하나도 넣지 않아요. 밀랍초 하나 피우고 있으면 좋은 꿀향이 은은하게 나고 프로폴리스 성분도 나와서 편안해집니다. 세상 속 화려하고 정신없는 빛들을 피해 작은 촛불의 빛 하나에 집중해보는 시간은 누구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요. '불멍'은 장작을 떼거나 피우는 큰 준비와 그에 맞는 큰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밀랍초 하나로 가능한 '초멍'은 손쉽고 깔끔해서 누구나 편히 즐길 수 있죠.
Q. 밀랍초를 만들면서 행복하신가요?
룰루 : 그럼요. 저희 둘이서 새로운 세상의 빛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니까요. 저는 우리 일에서 자긍심을 느껴요. 세상에 많은 초 작업자들이 있겠지만 저희가 만든 초는 유일해요. 유일한 것을 만들고 있기에 작가로서도 아주 기분이 좋아요.
랄라 : 룰루는 오늘 집 뒤쪽 대나무로 빨대도 직접 만들었어요. 그냥 일상이 핸드메이드고 작품이자 제품이예요. 앞으로는 천연 염색도 해보고 다양한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재미있을 거 같지 않나요?
Q. 제주에서의 삶, 행복하시죠? 도시에서의 삶과 어떻게 다른가요?
룰루 : 너무 행복하죠. 자본이 모든 것인 세상에서 벗어나 더 멋있는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사실 도시에선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하기보다, 적은 돈으로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실제로 해 보니 만족도가 높아요. 지금 하는 일이 요즘 이슈인 환경 문제와 관련이 있고, 요즘 트렌드는 핸드메이드니까... 이런 개념을 짜깁기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를 찾아서 만든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과 삶 사이에 불협화음이 없어요.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를 제품으로 만들어낸 것뿐이예요.
Q. 그 다음엔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룰루 : ‘그 다음엔 뭘 하면 될까?’ 하는 고민은 없어요. 우리 삶과 브랜드가 일치하니까요. 그 다음은 우리가 재미있어 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죠. 우리의 취향, 생활방식, 동선에 맞게 만드니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요. 부자연스러운 게 없고요, 매시간 매 순간을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지금도 그렇게 사니 그 다음도 당연히 그러겠죠.
Q. 요즘 조직이나 회사를 벗어나거나 혹은 사이드로 ‘내 일을 찾아 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랄지 로망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그런 것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해 주실 말씀 있으세요?
랄라 : 기존에 없는 나만의 것을 하고 싶다면 100프로 내 안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다른 생각이나 방식을 가진 분도 계시겠지만, 제 경험을 통해 저는 그래야 한다고 확신해요. 나라는 사람 자체가 고유하기 때문에 본인 안에서 출발하면 그 자체로 고유한 것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잘나가는 브랜드 성공 사례 같은 것을 먼저 보거나, 정보 수집해서 짜깁기하지 말고 본인에게 시간을 쏟고 자신을 아는 것,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알아내면 분명히 그것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걸 알릴 방법도 요즘엔 너무 다양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마디 해주세요.
랄라 : 이곳은 쇼룸도 매장도 아닙니다. 하지만 180년된 제주 서쪽의 돌창고에서, 세상의 빛이 꺼진 시간 동안, 밀랍초로 여러분의 작은 빛을 켜 보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기다릴게요! 오시든 안 오시든 저희는 저희의 삶을 살아가겠지만요, 하하. 늘 열려 있는 오픈된 공간은 아니지만 오시면 저희와 이야기도 나누시고 밀랍초도 분명 좋아하게 되실 거예요.
룰루 : 맞아요,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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