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소리소문 정도선 대표

“남들의 취향이 무엇일까 연구하는 서점입니다.”
책방 소리소문 정도선 대표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책방 소리소문(小里小文)을 찾아가는 길에서 갸우뚱했다. 21년 여름 한림읍 상명리에 있는 책방 소리소문을 찾아갈 때에도, 책방이 자리를 옮긴 후 22년 여름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지금의 책방 소리소문을 찾아갈 때도 그랬다. ‘이런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지나쳐지지 않을 것 같은 마을 안쪽에 서점이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래전 본 영화 ‘안경’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섬에 여행 온 여행자에게 숙소 주인이 그려준 단순하지만 애매한 지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2분 정도 더 참고 가면 거기서 오른쪽입니다.’ 고불고불한 밭길 안에 정말 책방이 있을까? 돌아 나가야 하나? 싶은 고민이 될 때 조금만 더 들어가면 나타난다. 서두를 것 없이 더 오래 머물고 싶게 단장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서점, 책방 소리소문이다.”


Q. 책방 소리소문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책 외에 다른 걸 판매하지 않는, ‘책만 파는 서점’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쉽게 고를 수 있도록 큐레이션을 다양하게 해 놓는 편이예요. 약 5천 종의 책을 만나실 수 있어요. ‘소리소문(小里小文)’은 소리소문 없이 좋은 책과 책방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과, 시골 마을에 들어섰을 때 만나게 되는 작은 글이라는 이중의 의미가 있어요.” 


Q. 서점이 책을 파는 곳은 맞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책으로만 수익을 창출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제가 처음에 이렇게 서점을 운영할 것이라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다 그랬어요. 미친 짓이다. 서울의 대형 오프라인 서점에서 10년 간 일을 했는데 동료들도 다 그랬죠. 책만 팔아서 어떻게 먹고 살 수가 있느냐. 카페, 강연, 굿즈 등을 팔아야, 부가 수익으로 서점이 운영 가능할 것이 아니냐. 너는 안 될 거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만 팔고 계시잖아요?

“저는 좀 생각이 달랐거든요. 주위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서점들이 책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릴수록 사람들은 책과 멀어진다는 생각이 늘 있었고, 어떻게든 책만 가지고 서점을 운영해 보고 싶었어요. 서점이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해서 커피 등의 음료나 굿즈 개발 등 다른 방안을 고민하다 보면 정작 책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 없어지잖아요. 서점이 다른 것 하느라 바빠서 손님들에게 적합한 책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책과 멀어지는 것. 이게 문제 아니었을까요?”


Q. “사람들이 책을 안 사기 때문에 서점이 힘들다”라는 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인데요?

“사람들이 책을 싫어하는 게 아니고, 책을 안 보는 것도 아닌데 서점들이 그 좋은 책들을 계속 읽을 수 있게끔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해서 서점이 어려운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서점을 직접 운영하게 되었을 때 이런 믿음이 있었어요. 좋은 책을 권했을 때, 서점 운영자인 제가 책에 온전히 더 집중했을 때, 사람들이 거기에 반응을 해 줄 것이라는 믿음.”


Q. 그 믿음은 아직 배신하지 않았나요?

“사실 어려운 거긴 하죠. 책 마진이 굉장히 낮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책 외에 다른 것을 팔지는 않지만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게 무엇일지를 고민했어요. 고민의 결과물이 ‘블라인드북’과 ‘리커버북’이예요.





Q. 블라인드북은 제목도, 작가도, 출판사명도, 표지도 다 가린 채 파는 책이네요? 추천 키워드로 보이는 태그와 가격만 적혀있군요.

“네, 맞아요. 게다가 정가에 포장비까지 덧붙여서 파는 책이예요. 인터넷 서점에서 10% 할인, 5% 적립해주는 것에 비하면 비싼 책이라고도 할 수 있죠. 약 12종이 준비되어 있으며, 매달 1~2종씩 업데이트 하여 구성 책이 조금씩 바뀝니다.”


Q. 책방 소리소문의 베스트셀러가 바로 ‘블라인드북’이던데요?

“네, 고객분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다들 갖고 싶어 하세요. 제주에 와서, 그리고 제주에서 이 책방에 온 것을 기념하고 싶은 분들이 많아요. 본인에게는 제주 기념물이 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줄 선물로 구매하시기도 해요.”


Q. 책 자체에 부가적 가치를 더해서 수익을 창출하게 되신 거군요! 그런데 블라인드북으로 포장될 책을 고르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일 것 같아요.

“굉장히 어려워요. 베스트셀러이거나 너무 잘 알려진 작가의 작품은 안 돼요. 열었을 때, 이미 가지고 있는 책과 중복되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았고, 유명 작가의 작품도 아니지만 꼭 소개해드리고 싶은 책들로 선정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디자인이 예쁜 책을 고릅니다. 포장을 열고 책을 열었을 때 예쁘면 감동이 더 커지거든요. 다행히도 안에 들어있는 책에 대한 고객들의 호불호가 갈리지는 않아요.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양하지만 어느 누가 봐도 괜찮은 책이라고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면서 예쁜 책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Q. 리커버북과 제주에디션 시리즈도 눈에 띕니다.

“리커버북은 세계 고전 문학 중 몇 권을 골라 제주 일러스트 작가의 새로운 책 표지로 새롭게 탄생시킨 책입니다. 일러스트 작가는 저희가 골라준 책을 읽고 자기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기존 표지가 아닌 새로운 표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책은 저희 서점에서만 팝니다.”



Q. 이곳에서만 구매가 가능한, 한정 희귀템이군요!

“맞아요. 책에 기념품으로서의 가치를 더한 거죠. 제주에디션은 사랑받는 한국 작품들을 제주의 느낌이 나도록 재해석해서 표지를 작업한 거예요. 이런 기획은 책방의 수익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나온 가치 상품이고, 책방 운영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Q. 제가 책방 소리소문에 맨 처음 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일단 서점 공간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고, 게다가 손님들이 책을 두세권씩들 사고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제주에서 책방을 오픈했을 때부터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었는지, 아니면 어떤 시점 이후로 방문자가 늘어났는지 궁금하거든요. 

“처음에 저희가 있던 자리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책방이 있어야 될 동네가 아닌 곳에 책방이 있죠.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를 오려고 이 동네를 검색하고 찾아와요. 물론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죠. 그래서 처음에 한두 명씩 오시는 모든 분들을 따라다니며 책방을 소개하는 도슨트를 해 드렸어요.”


Q. 보통 미술관이나 관광지 가면 해 주는 해설 또는 설명 프로그램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요. 책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운영자인 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걸 어떻게 꾸려갈 것이다 하는 것을 방문하신 손님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무조건 설명해드렸어요. 그러고 나니 입소문이 난 것 같아요.”


Q.  동네 서점에 가면 운영자의 취향에 맞게 선별된 분야나 출판사의 책, 혹은 독립출판물만 파는 데도 있던데 이곳은 어떤 취향을 담고 있나요?

“요즘 책방들이 개인의 취향, 즉 책방 주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게 굉장한 콘셉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가 보면 아주 굉장한 매력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계도 분명한 것 같아요. 책방을 찾는 사람들의 취향은 굉장히 다양하니까요. 책방 소리소문은 특정 세대나 특정 취향을 가진 분들만 만족하는 서점이기보다는 여기 온 누구라도 책에 빠질 수 있고 본인에게 맞는 책을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서점입니다. 제 취향을 드러내는 서점이기보다, 남들의 취향이 무엇일까 연구하는 서점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Q. 요즘 책방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부쩍 많은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요?

“자기 만족을 위해 책방을 꾸려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요. 수익성때문이 아니라 운영하는 사람이 그저 책방이라는 공간이 좋고 편해서… 그런데 지속 가능해야 되는 게 첫번째 일 것 같아요. 그래야 이 직업을 남들에게 권해줄 수 있고 후배를 키울 수가 있고, 이 산업이 이어질 수 있는 거잖아요.”


Q. 책방에 오는 고객층은 어떻게 되나요?

“주요 고객은 30~40대 여성분들이고, 여성 고객이 80%, 남성 고객이 20% 정도예요. 그 마저도 남자분들은 연인이나 가족을 따라온 경우가 많죠. 그런 분들을 보고 ‘억지로 따라온 남자들을 위한 책’ 공간을 마련해 뒀어요. 책방에 따라오신 분들이 책방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핸드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요. 저분들을 어떻게 책방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지 고민하다가, 그분들을 위한 책을 재미적인 요소들을 더해서 마련해 뒀어요. 일단 이걸 보면 웃으니까요 통한 것 같아요. 책방에 가서 웃을 일이 잘 없거든요.”


Q. 책방에 오면 조용해야 할 것 같아요. 소리 내어 웃어도 되나요? 

“전 그런 게 싫어요. 서점과 도서관은 정적이어야 하고, 조용해야 하고… 이런 분위기가 싫고 그냥 되게 떠들었으면 좋겠어요 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요.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웃고 떠드는 재미있는 공간에서 좋은 추억을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저희 책방에는 제주 도민 외 여행자들이 많이 오세요. 제주를 중심 ‘책방 투어’라는 게 트렌드가 되고 있어요. 아이들과 오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공간 면적에 비해 아이들을 위한 코너도 꽤 크게 마련해 놓고 있어요.”


Q. 제주 로컬에서 운영하는 지역 서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지역 서점은 그 지역에 대해 보여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주 코너’를 꽤 크게 마련해뒀어요. 벽면에 책장을 직접 그려서 책이 만화적으로 돋보일 수 있게끔 진열했어요. 제주 관련 콘텐츠를 떠올릴 때 별게 없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분들도 제주에 대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고서는 되게 놀라시죠.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못 보여줘서 못 볼 뿐이라니까요.”



Q. 인스타그램에서 책방을 검색해 보면, 필사하는 모습의 사진들이 많이 나오던데요?

“필사 코너가 사실 제일 인기 있는 자리예요. 책상에 홀로 앉아서 필사할 수 있도록 해 두었어요. 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쓰는 행위 자체를 거의 안 하게 되잖아요. 그러다가 여기 와서 필사하는 자리를 만나면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쓰는 행위는 그 자체로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어서 짜릿하기도 하고요. 소리소문에 와서 글씨로 본인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의미 있어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Q. 책방 운영하면서 힘든 점이나 해결해야 할 것들은 없나요?

“저희 서점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텐데 책방에 오셔서 예쁘다 하고 사진만 찍고 나가시는 분들이 초반에 굉장히 많았어요. 너무 당연한 건데… 책방에 와서 책 한 권 사서 나갈 수 있게 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되게 힘들었죠. 지금은 책방 와서 사진만 찍고 가시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일단 책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여기 오면 어떻게든 한 권은 자기책으로 집어 나갈 수 있게 수를 써 뒀죠. 책에 관심 없는 분들도 여기 온 이상 뭔가 만족할 만한 걸 드릴 수 있게 책방을 구성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재미있고 다양한 큐레이션으로 조금씩 문화를 바꿔가고 있습니다.”


Q. 책방 공식 인스타그램에 사장님께서 책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글을 올린 적이 있으시죠.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요.

“책방의 모든 책은 새 책이에요. 이곳은 중고책을 파는 곳이 아니잖아요. 새 책이지만 고객들이 열어볼 수 있어야 하는 건 오프라인 서점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 매력이고요. 하지만 조심히 봐 주셔야 해요. 가끔 맨 위의 책을 보시다가 내려놓으시면서, 새 책 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본인이 떨어뜨려서 책 모서리를 망가뜨린 후 그걸 그냥 두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렇게 망가진 책은 다 재고로 떠안기 때문에 오롯이 저희 서점의 부담이 되죠. 새 책을 소중히 다뤄 주시기를 고객들에게 요청 드리고 있습니다.”


Q. 제주에서 책방을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으신 순간이 궁금합니다. 

“서울의 대형 서점에서 일하면서, 독립해 저의 서점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서점들의 운영 사정을 잘 알다 보니까 용기가 안 났죠. 그런데 제주에 한 달 살기를 왔다가 우연히 공간을 보고, 여기라면 임대료도 부담이 없고 한 번 해 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났어요. 그때 아내가 딱 1년의 시간을 주겠으니 해 보라고 했죠. 다행히도 잘 되어서 지금까지 꾸려가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책방 소리소문에 오실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은요?

“와서 최대한 오래 머물다 가셨으면 해요. 책방에서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경험해보고 좋은 기억을 얻어 가시기를요. 그럼 꼭 저희 책방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 가서도 책방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실 거예요. 그러다 보면 결국 책과 친해지고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사소하고 조그맣지만 즐거운 경험들을 할 수 있게 늘 준비해 두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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