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제주 강민경 작가

“무리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낯선제주 강민경 작가 

“제주 동네책방에서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된 민경 님은, 초면에 본인을 "제주에서 잘 놀고 있는 사람이에요."라고 소개했다. 초여름에 만났는데 한여름이 다가 오자,  "여름방학을 가지려고 합니다. 한 달 후에 만나요!" 하고는 하던 취미 활동조차 접고 올레 길을 걸으러 갔다. 한 달이라던 여름방학은 한 달 반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잘 놀고 있다는 사람이 얼마나 더 잘 놀려고 '여름방학'을 가지? 잘 놀고 잘 쉰다는 것은 우리에게 늘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에 밀려나 있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게 했다. 여름방학 지나 겨울방학까지 지나고 드디어 올해 봄, 제주에서 잘 놀고 잘 쉬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왔다."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제주에서 ‘낯선제주’라는 1인 출판사와 같은 이름의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강민경입니다. 2020년에 <제주스러운 날들>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2022년에 ‘낯선제주 엽서북’을 만들고, 올해 2023년에 4월에 세 번째 책인 <취미 부자>를 낸 뽀시래기 작가이기도 해요.” 



Q. 첫 책을 출간하면서 동시에 출판사도 차리신 거죠?

“네, 제 책을 내려고 출판사를 만들었어요. 제주에서 산 지 5년쯤 되었을 때 제주에서 지낸 이야기들을 묶어서 책을 만들면 좋겠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그때 마침 가까운 곳에 있는 동네서점에서 독립 출판 클래스 과정이 열렸어요. 그 과정에 참여하고 독립출판물로 책을 만들었는데 과감하게 1천 부를 찍었어요. 우연히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잘 팔렸어요. 그래서 ISBN을 받아 정식 출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봤는데 출판사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1인 출판사를 등록했어요. 그러고는 생각했죠. “출판사를 냈으니 1년에 책 한 권씩은 만들어야겠다!”고요.”



Q. 제주에서의 이야기를 묶어 내는 작가이자 본인의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를 차린 출판인이시군요.

“그렇죠. 저는 서양화를 전공했고 대안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제주에 와서도 소소하게 일러스트 등 그림 그리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제 책은 그림 위주의 에세이가 되었고요. 제 짝꿍은 글 실력이 좀 좋은 편인데 요즘엔 짝꿍을 유혹하고 있어요. “일기를 좀 잘 써 봐, 내가 너의 이야기로 책을 만들어 줄게. 삽화비는 많이는 안 받을게.” 하면서요.”


Q. 출판사 사장님 마인드군요! 제주에서 5년쯤 살았을 때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셨다는 거 보니 원래 제주 분이 아니신 거죠?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원래 태어난 곳 역시 시골인데, 학교와 직장 생활을 한 곳이 서울이었고 서울에서 지내다가 제주로 내려온 지는 약 8년이 되었어요.”


Q. 제주로 와서 살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주로 여행을 자주 왔어요. 제주로 여행을 와서 한 일은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그냥 걷거나 바다를 보고, 노을을 보고…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제주로 여행을 즐겨 왔어요. 그러다가 제주에서 지금의 남편인 짝꿍도 만났죠.” 


Q. 제주에 여행을 와서 현재의 남편 분을 만나셨다고요?

“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어요. 짝꿍은 당시 올레 길을 걷고 나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일하면서 제주에서 지내고 있었고, 저는 서울 직장생활 중에 잠시 쉬려고 온 상황이었어요. 한두 번 연락하고 지내다가 ‘참 괜찮은 친구군.’이라고 느꼈고 같이 한번 여행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그래서… 여행을 함께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려는 건가요?

“하하, 그렇습니다. 저는 여행을 가기 위해 서울의 직장을 정리했어요. 그리고 전재산을 끌어 모아서 유럽과 동남아를 약 280일 정도 함께 여행했어요. 여행이 끝나고 보니 저는 직장도 그만뒀고, 우리 같이 제주에서 살아볼까 하고 제주도에서 살기 시작했어요.”


Q. 여행을 가기 위해 회사를 관둔다는 게 보통의 일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저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안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어요. 누구를 가르친다는 일이 굉장히 즐거운 일이긴 한데 그게 아주 제 적성에 맞는 일은 아니었어요. 특히나 어린이를 가르친다는 것이요. 제가 가진 직업과 저의 적성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지점에서 늘 이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었죠. 그러다가 이렇게 판단했어요. ‘여기까지 하면 적당했다.’ 그러고 나서 정리한 김에 못 가 본 나라들 여행이나 가 보자 하고 여행을 떠났던 것 같아요.”


Q. 변화를 생각하는 시점에 마침 여행이, 그리고 함께 가 보고 싶은 짝꿍을 만났던 거군요.  

“짝꿍과 여행을 같이 하면서 ‘같이 살면 좋겠구나, 너와 함께 인생을 살아도 되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여행이 끝나고 부모님께 서로 인사를 드리고 육지에선 양가 부모님을 위한 잔치로서의 결혼식을 치르고 둘이 곧바로 제주로 내려왔어요.”


Q. 신혼이 제주에서 시작된 거예요?

“네. 아무것도 없이 그렇게요. 직장을 그만둔 저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생활을 그만둔 짝꿍 둘이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일단 살아보자 하고 내려왔어요.”



Q. 제주에서 여행을 많이 해 봤고, 반려자를 여기서 만나기도 했고, 자연스레 여기서 살아봐도 되겠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던 건가요?

“음. 여기가 예뻤어요!  자연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할까요. 저희의 제주 생활이 겨울에 시작되었거든요. 제주가 겨울에 춥지 않다고 하긴 힘들지만(춥습니다!), 그럼에도 초록이 싱그럽다고 해야 할까요, 청아한 맛이 있어요. 특히 곶자왈에 들어가거나 오름, 산에 가면 푸름이 있는 따스함이랄까… 겨울에도 그런 것들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사계절을 여기에서 보내 보자는 생각을 한 거죠.”


Q. 그때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미쳤구나.”


Q. 그리 예상하기 어려운 반응은 아니죠?

“그렇죠. 둘 다 재산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둘이 합쳐서 몇 백만원 정도 있었어요. 그런 상태로 내려와서 시작했는데 다행스럽게 이러저러한 것이 참 잘 맞아 돌아갔어요. 우선 요즘의 가격이랑 비교할 수 없이 싼 연세(월세 혹은 전세와는 달리 1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제주의 독특한 임대차계약 형태)도 잘 구해졌고요. 많이 벌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적당한 상태의 집을 구할 수 있어서 일단 시작할 수 있었어요.”


Q. 그런데 살 집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둘 합쳐서 몇 백만원이 있었으니까… 한 반 년 정도는 그냥 놀자 했어요. 일단 이것까지는 쓰고 그 다음에 직장생활을 해야 하면 하든지 해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니까 아침에 일어나 보말(바다 고둥을 말하는 제주어)을 따러 바다에 가고, 따온 보말로 미역국을 끓여 먹거나 칼국수를 해 먹고, 쑥이나 달래도 캐러 다니고 하면서 자급자족하니 큰 돈이 필요치도 않았어요. 달래 간장 만들고 계란 사 와서 밥 비벼 먹고, 가끔 낚시 가서 한 시간 낚시해서 잡히면 오늘은 매운탕, 안 잡히면 보말죽 또 먹고 그러는 거죠. 미역 따 와서 미역국도 해 먹고요. 제주도의 사계절이 주는 것들을 잘 받아먹었어요.”


Q. 제주가 주는 것들로 자급자족하는 생활이 가능했군요.

“맞아요. 그리고 동네 삼춘(친족, 촌수와 상관없이 동네 어른들을 통칭하는 제주어)들이 그때 그때 나는 먹거리들을 갖다 주시기도 하세요. 양배추를 주시면 양배추를 쩌 먹고… 그런 거죠.”



Q. 첫 책 제목이 <제주스러운 날들>이잖아요. 지금 말씀해주신 그런 것들이 제주스러운 날들인가요?

“비슷해요. 제가 첫 책을 쓸 당시에 주변을 보니 제주에 살러 왔다가 떠나시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제주에서 이주민들끼리 알고 지내다가 사이가 틀어지고, 그런 과정에서 마음이 상하거나 외로워서 떠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옆에서 바라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이 떠나는 제주를, 제주에 살면서도 아직 충분히 다 보지 못했을 텐데…’ 하는. 제주의 그 계절을 더 즐겼으면 좀 더 위로받고 좀 더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사람이니까 사회적 활동을 하교 교류를 해야 하는 것도 맞는데 저는 그것보다는 제주 자연에서 받는 게 훨씬 큰 편인 것 같아요.”


Q. 제주의 계절, 제주의 자연에서 받는 위로라…

“봄 되면 그냥 고사리를 따면서 받는 위로, 바다에 가서 미역을 따면서 받는 위로… 다시 말해, 내가 특별히 뭘 하지 않는데 주는 것들이 많은 자연에게 받는 위로가 굉장히 큰 느낌이에요. 그래서 제주에 사시거나 제주에 여행 오신 분들이 제주의 그 시절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즐겼으면 좋겠어요. 여름이 오면 또 산딸기를 따 먹고, 잼도 만들고 주스도 만들고 술도 담그고… 그리고 여름엔 진짜 바다를 잘 즐겼으면 좋겠고요. 그런 것들을 온전하게 잘 즐기는 게 제주스럽지 않나요?”



Q. 첫 책 <제주스러운 날들>은 본인이 제주에서 잘 얻고 위로 받는 것들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안내서인 셈이군요?

“맞아요. <제주스러운 날들>은 제주의 사계절을 어떻게 잘 즐길 수 있을지 알려주는 제주 생활 안내서 같은 그림 에세이예요. 제주에 왔는데 그 계절에 무엇을 하면 이곳을 잘 느끼고 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을 때 이 책을 펼쳐보면 계절별로 하면 좋은 것들을 볼 수 있어요. ‘저 맛집을 가, 저 핫플레이스를 가’ 이런 게 아니라 이러 이러한 것을 하면 훨씬 풍요롭고 풍족하게, 돈 되게 많이 쓰지 않고도 만족감이 커지는 경험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에요. 저는 이런 것들을 하니 만족감도 크고 즐거운데 혹시 다른 분들도 이런 걸 해 보시면 더 즐겁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Q. 그 책이 무려 2천 권 가까이 팔렸다고요. 2천 명의 독자분 외에 이 인터뷰를 읽으실 분들을 위해 제주에서 계절별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하나씩만 소개해 주시겠어요?

“하나씩만 꼽기가 참 어렵지만, 일단 봄날에는 고사리 꺾는 재미를 한 번은 느껴 보시면 좋겠어요. 제주 삼춘들은 자기들만의 비밀 고사리 밭이 있다고 하시거든요. 물론 아무에게나 알려주지는 않아요. 그래도 알음알음으로 ‘이쪽 저쪽으로 가면 통실통실한 고사리들이 있단다~’ 하고 알려주시기도 해요. 고사리를 말렸다가 두고 먹는 것도 좋긴 한데, 따온 걸 바로 데쳐서 고기랑 구워 먹으면 정말로 맛있어요. 봄 기운이 확 느껴지고 먹으면서 건강해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으실 거예요.”


Q. 봄에는 고사리 채집 활동을 추천하신다면, 여름에는요?

“여름에는 바다를 좀 더 가까이서 느끼셔야죠. 제가 더운 날씨를 좋아해서 그렇기는 하지만 여름에는 그냥 하루 종일 바다에서 노는 경험을 해 보시면 좋겠어요. 잠깐 놀고 가는 거 말고,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요. 아니, 해가 진 이후의 밤바다까지요. 매 시각 달라지는 바다에서 여기저기 돗자리 펴고 앉았다 눕기도 하고요. 너무 더운 날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뻘뻘 나는데 그럴 때 바다 한번 들어갔다 나오고요. 그러면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하다 보면 노을 지는 때가 되겠죠. 그때가 되면 ‘정말 여기 있길 잘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햇살이 좋고 날이 좋을 때는 하루 종일 바다에서 놀면서 이걸 온전하게 잘 즐겼으면 좋겠어요.”



Q. 가을에는 뭘 하면 좋을까요?

“저는 가을에 꼭 억새를 보러 가요. 특히, 해가 질 때 바람에 억새가 황금빛으로 일렁일 때 억새를 보면 지구별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실감하게 돼요. 따라비오름이나 새별오름, 정물오름 등 주위에 인공물이 많지 않은 곳에 가서 온전한 자연을 느끼면서 충만한 느낌을 가져보세요.”


Q. 그럼 이제 마지막. 겨울에는요?

“겨울에도 할 게 너무 많은데…. 일단 귤잼을 만들어야 해요. 겨울이면 제주에선 어느 식당을 가도 귤을 한 컨테이너씩 담아 놓으시죠. 식사하고 그냥 가져가 먹으라고 내놓으시는 경우가 많아요. 여행 오신 분들은 그걸 보고 ‘이거 그냥 가져가도 된대. 공짜래.’ 하고 되게 놀라시더라고요. 약간 상처가 있거나 모양이 안 예뻐서 팔지 못하는 것들, 그런데 먹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아까운 귤들이 많거든요. 그런 귤들을 귤밭 하는 삼춘들이 또 한 보따리씩 나눠주세요. 그런데 우리도 그걸 먹는 데 한계가 있으니 잘 보관해서 먹고 싶은 마음에 귤잼을 만들곤 해요. 만든 귤잼을 빵에 발라 먹고, 차로 타 먹고, 요거트에 넣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귤잼은 겨울 필수 아이템이에요. 해 놓고 사계절 내내 먹어요.”



Q. ‘제주스럽다’는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질문지를 받고 제일 어려웠던 부분인데요,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지금 내가 제주에 와 있는 그 계절 그 시간을 잘 즐기는 것’이라고요.”


Q. 제주에 살면 이 질문 많이 받잖아요. “제주 살면 어때?”라는 질문. 제주라이프 8년차인 민경 님은 뭐라고 답하시나요?

“불편하고 좋다!”


Q. 불편한 것은 보통 좋지 않은 것과 맥을 같이 하는데요. ‘불편하고 좋다’라….

“불편한 것도 제주스러운 것이에요. 불편하기 때문에 좋은 점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제주에서 제주 시내에 살지 않는다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편의로운 것들을 취하기에 굉장히 불편해요. 하지만 편리함과 멀기에 가까이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편리한 택배도 빠른 배달도 없지만 아침부터 동박새를 비롯해서 다양한 새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깰 수 있죠. 편리함을 누리려고 제주로 온 게 아니잖아요. 불편해서 오히려 좋은 것들, 즉 자연과 가까운 것들이 주는 좀 더 조용하고 아늑하고 평온한 순간들을 많이 느끼기 위해서 제주에 온다면 제주의 삶은 굉장히 좋아요.”


Q. 성공적인 첫 책 다음에 엽서북도 내셨죠?

“<낯선제주 엽서북>은 제가 한 달에 하나씩 그린 그림을 모아서 만들었어요. 한 달에 한 장씩 꾸준하게 그려서 스무 네 장이 되었는데 제주 풍경과 제주 사계절이 잘 담겨 있어요. 그렇게 그린 그림을 좀 더 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엽서북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만들었지만 볼 때마다 뿌듯하답니다.”


Q. 요즘 책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보통은 그럼 원고를 만들어서 출판사에 투고를 하자는 생각을 우선 하지 않나요? 그런데 민경 님은 단번에 출판사를 차려 버리셨어요!

“저는 제가 전부 다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처음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온전하게 제가 하는 것들을 즐기는 편이에요. 출판사를 찾아가고 의뢰하는 것들이 저는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다 할 수 있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판사를 직접 만들면 일 년에 한 권씩 책 내는 것을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Q. 그래서 해 보니 책 만들고 내는 일은 할 만한 것인가요?  

“그림을 한 장씩 그려서 붙여 놓는 것도 의미가 있는데,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보니 또 다른 굉장함이 있어요. 일단 ‘잘 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책이라는 도구를 쓰는 게 굉장히 좋다는 걸 느꼈고, 그러니 이걸 잘 활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에요. 내 그림이나 이야기가 엄청 대단하거나 매력적이지 않아도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하고 잘 모아서 내 기록들을 남겨볼 수 있는 게 책이에요. 그런 점에서 할 만한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꾸준히 잘 하기 위해 출판사가 필요하고, “출판사 등록해!”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출판사를 냈습니다. 그렇다고 저처럼 모든 분들이 출판사를 직접 내실 것까진 없지만, 책으로 나의 기록을 모아 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Q. 책 작업 외에 또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제주살이 초반에는 수업을 많이 나갔어요. 방과 후 미술 수업이나 어른들 드로잉 수업 같은 거요. 제 공간에서도 어르신들을 위한 그림 수업들을 해요. 그림을 그린다는 게 뭔가를 보고 그것들을 하얀 종이에다 새롭게 배치하고, 색을 입히고 하는 창작의 과정인데 어른들에게 굉장히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 또래만 되도 인생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는 친구들도 많고요. 익숙한 풍경이지만 관찰해 보면 낯설게 보이는 것들, 그것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신선한 충격을 느낄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창작의 즐거움을 아시게 되면 좋겠어요. 어른들을 위한 취미 생활을 응원합니다.”


Q. 4월 1일에 출간된 신간 제목이 <취미 부자>라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저자라고 해서 소설 같은 것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니고요, 제가 보고 느낀 것들과 저의 그림을 모아서 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저는 이동을 하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편인데, 이 책의 경우는 서울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이어리에 이것저것 적다가, 제가 가진 취미를 목록처럼 써 봤어요. 그러다가 그걸 일러스트 그림과 같이 엮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제목을 고민하다가, 나는 취미가 많으니까 취미 부자. 그래서 책 제목도 <취미 부자>입니다. 저의 취미 생활을 모아서 만든 그림 에세이입니다. 저의 책들은 낯선제주 스마트스토어나 제주와 육지의 동네서점들에서 구매하실 수 있어요.”






Q. 제주에서도 한경면의 굉장히 시골스러운 동네에서 지내고 계신대요. 이주민이 이런 로컬 동네에 정착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실제로 어떠셨어요?

“사람마다 되게 다를 것 같아요. MBTI로 말을 하면 저는 내향(I)이 51, 외향(E)이 49예요. 적당히 외향적이고 적당히 내향적이랄까요. 여기 와서 저는 원주민분들, 즉 삼춘들이랑 잘 지내는 편이에요. 제주 와서 살기가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주 지역 주민들과 섞이는 걸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꼭 제주에서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요. 어느 시골이든 그 동네만의 문화가 있죠. 그들 안의 공동체가 있는데 외부 사람이 떡 하니 들어와서 갑자기 나도 여기 섞이고 싶어요 하면, 갑자기 그게 되지 않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Q. 민경 님은 동네 삼춘들과도 잘 지내시는 것 같은데 비결이 있나요?

“단번에 이 동네 사람들과 섞이겠다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머문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 같아요.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몇 가구 되지도 않는 시골 동네에서 삼춘들이 오고 가며 우리 마당은 깨끗한지, 정원에 풀이 너무 많이 자란 건 아닌지 무심하게 봐 주시기도 해요. 저는 마당의 밭 가꾸는 걸 좀 좋아해서 검질(잡초 정리)도 해 두고 꽃도 심으면 지나가시면서 그런 걸 예쁘게 봐 주시기도 해요. 젊은 것들(저랑 짝꿍)은 그늘 아래서 쉬는데, 땡볕에 밭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죄송하기도 해서 시원한 커피나 참을 좀 챙겨다 드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무탈하고 무난하게 삼춘들이랑도 잘 지내게 되었어요.”


Q. 일부러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지만 무심하게 스며드는 게 어쩜 비결이겠네요.

“맞아요. 저는 친해지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제주라이프가 꼭 어떤 사람이랑 연결되고 누구를 꼭 알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모양도 아니거든요. 적당히 알고 적당히 몰라서 평화롭고 좋은 점이 있어요. 도시에서는 직장생활도 그렇고 모든 생활 부분에서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힘듦이 많잖아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선택적으로 인간관계를 할 수 있고, 혹시나 누구와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어요. 너무 강박적으로 누군가와 친해져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편할 수 있어요. 게다가 저는 다행히도(?) 짝꿍과 함께 살고 있죠. 세상에서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옆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납득하는 데 굉장히 많은 시간을 쓰고 있어요. 알고 지낸 지 10년인데도 새로운 점이 보이고, 변하기도 하는 와중에 상대를 알아가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함께 사는 사람과도 이런데 외부에서 만난 사람들을 단번에 알고 친해지겠다 하는 건 사실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지도요.”



Q. 제주에서의 장기 여행이나 제주살이가 힘드신 분들이 있다면 그런 분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요?

“먼저 외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 보시라고요. 혼자 시간을 쓰는 법을 잘 모르는 어른들도 많은 것 같아요. 원래 나에게 집중하는 게 쉽지 않기도 하고, 그걸 안 해봐서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혼자 시간 쓰는 법을 알아가는 것도 나이 들어가는 과정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인간관계가 힘들다면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셔도 되죠!”


Q. 자연을 만끽하는 것, 본인이 굉장히 잘하시는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러려고 제주에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안 그런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어떤 분은 자기가 자연을 너무 좋아하는 줄 알고 제주를 왔는데, 와서 보니 자신은 도시의 편리함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로컬 생활이 한 번은 꼭 해 볼만한 것 같기도 해요.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지,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요. 우리는 사실 우리를 아는 데 많은 시간을 써 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조용한 시골 동네에 와서 많은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건 제가 느낀 건데 ‘내가 생각보다 클럽을 좋아하지 않았구나, 클럽 참 많이 갔었는데!’ 이런 거요.”


Q. 로컬에 와 살면서 적응을 잘 못하고 다시 떠나게 되면 뭔가 잘못된 선택을 했고 적응에 실패했다고 느끼기 쉬운데, 그것 또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단적인 예로 시골 라이프 유튜브 채널 같은 걸 즐겨보는 것과 직접 텃밭을 가꾸며 사는 건 다른 일이죠. 직접 해 봐야 그게 본인 체질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어요.”


Q. 출판사 이름이 ‘낯선제주’인데요, 어떤 의미로 붙인 이름인가요?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로 볼 때는 ‘낯선’ 보다는 ‘다정한’, ‘즐거운’ 이런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주에 살면서 신기했던 것은 제주가 가진 ‘익숙해지지 않는 매력’이에요. 매번 낯선 거예요. 자연이란 게 원래 그렇기도 하지만, 같은 곳을 가도 봄 다르고 여름 다르고 매번 다른 모습이에요. 그 낯섦이 너무 좋아요. 낯설다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게 너무 익숙한 내 남편, 내 짝꿍인데 가끔 만나게 되는 낯선 순간들도 사랑스럽고, 낯섦이 있어서 익숙함이 또 좋아지고 고마운 것처럼요. 제주에서도 그런 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제주가 가진 ‘낯선 아름다움’을 잊지 않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낯선제주’라고 이름 지었어요.”



Q. 낯선제주에서 제주스러운 날들을 살고 있는 민경 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떠올리실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대신해 보려고 합니다. “불안하진 않으신가요?”

“서울에서 살 때 되게 치열하게 살았어요. 열심히 일했고, 밤 12시까지 야근하는 것도 비일비재했고, 일찍 나가고 늦게 퇴근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살았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정말 이렇게 살아서 행복할까’를 고민했죠. 직장을 가지고 열심히 살던 사람이 제주에 내려와 무직으로 산다는 것, 당연하게 저희도 처음에 굉장한 불안감을 느꼈어요. ‘이렇게 놀아도 될까…’ 하는 불안감들을 안고 놀았어요. 열심히 사는 게 익숙했던 삶에서 열심히 살지 않는 삶이 익숙해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이렇게 많이 일하지 않고 적당히 놀면서도 삶이 유지될 수 있다는 걸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배웠어요. 그래서 조금 벌고 조금 쓸 수 있게 되었고, ‘무리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열심히 하는 게 하나 있다면, 무리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보다 그냥 제 인생을 즐겁게 잘 살다가 즐거운 할머니가 되면 좋겠거든요. 나이 들어서도 여행 떠날 수 있고, 나이 들어서도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하고 즐겁게 놀고 싶어요. 나이가 들수록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많이 합니다.”


Q. 무리하지 않는 것조차도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에요. 그렇죠?

“제가 뭔가 무리하고 있는 것 같으면 옆에서 짝꿍이 그런 말을 해줘요. ‘그렇게 막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적당히, 시간을 느긋하게 가지고 해도 돼.’라고요. 그럼 제 안에 서두르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조금 쉬어 가면서 무리하지 않고 지속하게 돼요. 무리하지 않고 즐기기 위해 불안함을 감수한 시간도 충분히 가졌어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봄날엔 봄날을 즐기고, 여름엔 여름을 즐기면서 지내시면 좋겠어요. 그렇게 살아도 큰일 나지 않아요. 오히려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살 때는 ‘이렇게 살다 큰일 나겠다’는 위기 의식이 있었어요 저희는. 하지만 개인마다, 가정마다 다를 거예요. 저희는 2인 가정이고 아이가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쉽게 충분해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제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우리가 태어났고 둘이 만났으니 우리 둘이 재미있게 살자- 하고 살고 있을 뿐이에요. 모두가 치열하고 열심히 하는 삶을 살 때, 그리고 너도 그래야 한다고 누군가 말할 때, 제 조카가 “우리 이모는 그렇게 안 살던데요.” 하고 저희가 사는 모습을 통해 자신만의 꿈을 꿀 수 있다면 되게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문득 해요. 어쨌거나, 순간순간의 행복을 느끼고 ‘아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자주 느끼며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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